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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관리, 먹거리 혁명에 뛰어들다

고구마 전래자 조엄과 혁신 리더들의 목민리더십

조선에 최초로 고구마를 들여와 ‘먹거리 혁명’을 이뤄낸 혁신관리, 조엄! 조엄이 전하는 고구마 혁명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할까? 공직에 있는 리더들은 조엄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목민관 리더십’인지 알 수 있다. 조선에 고구마를 전래한 조엄의 ‘먹거리 리더십’은 목민관적 삶의 표상이자, 되새겨야 할 경영 모범이 되는 가장 실증적 사례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구황작물인 고구마를 들여온 이는 조엄(趙曮, 1719∼1777)이다. 조엄은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돼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보고 기아 대책의 최적 작물임을 직감한다. 당대 최고 관료집안 출신이자, 세도 등등한 풍양 조씨 문벌가였던 조엄은 왜 고구마에 그토록 지대한 관심을 갖은 것일까? 조엄이 일본에..
조선에 최초로 고구마를 들여와
‘먹거리 혁명’을 이뤄낸
혁신관리, 조엄!
조엄이 전하는 고구마 혁명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할까?
공직에 있는 리더들은 조엄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목민관 리더십’인지 알 수 있다.
조선에 고구마를 전래한 조엄의 ‘먹거리 리더십’은
목민관적 삶의 표상이자, 되새겨야 할 경영 모범이 되는
가장 실증적 사례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구황작물인 고구마를 들여온 이는 조엄(趙曮, 1719∼1777)이다. 조엄은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돼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보고 기아 대책의 최적 작물임을 직감한다. 당대 최고 관료집안 출신이자, 세도 등등한 풍양 조씨 문벌가였던 조엄은 왜 고구마에 그토록 지대한 관심을 갖은 것일까?
조엄이 일본에 파견되는 대일(對日)통신사 최고책임자로 발탁된 해는 1763년이었다. 이 해를 전후로 해서 조선 각처는 극심한 기아에 시달린다. 조선 후기인 영조 대에 들어서면 국가적으로 백성들의 먹거리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른다.
조정이 권농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흉년이 계속 들고 자연재해까지 겹쳐 농민들의 삶이 극한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빈민의 증가와 더불어 기댈 곳 없는 백성들은 유리걸식했다. 이 같은 처참한 사정은 조엄으로 하여금 조선 관리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뼈저리게 각성하게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조엄은 일본에 조선을 대표하는 통신사절 일원으로 파견되게 되는 것이다.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된 조엄은 첫 기항지인 대마도에 도착하자마자 그동안 고심해 왔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기막힌 해법을 목도하게 된다. 그의 눈에 든 건 다름 아닌 고구마였다.
고구마는 원래 멕시코와 중남미 및 남미 북부지역이 원산지로, 콜럼버스의 대항해 도중 발견되어 지구를 온전히 한 바퀴 돈 다음 조엄이 일본으로 파견되기 이전에 이미 대마도에 전파되어 재배되고 있었다. 대마도에서 운명적으로 고구마를 접한 조엄은 일본열도로 통신사행이 떠나기 전에 사스우라(佐須浦) 항에서 급히 비선을 띄워 고구마 종자를 부산으로 보낸다. 그때 그는 종자만 보낸 것이 아니라 보관, 재배, 증식법에 관한 자료까지 함께 보냈다. 조선에서 첫 배양과 증식이 가능하도록 조처한 것이다. 이후 고구마 종자와, 관련된 지식은 이것들을 퍼뜨렸던 핵심 초발혁신가들과 함께 하나의 굳건한 지식으로 집대성 되며 지식경영의 큰 축을 이룬다. 이로 인해 조선의 식량문제는 해법이 찾아지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고구마가 전래되며 조선의 구황정책에 일어난 변화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초기부터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서서히 확산되어 가면서 재배 지식과 함께 조선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해법으로 자리 잡아 나갔던 것이다. 이어 명실상부 뭇 생명들을 기아로부터 구하는 핵심 구황작물이 된다.
18세기 조엄의 ‘먹거리 리더십’을 살펴보며 생각하게 되는 게 있다. 그가 지닌 목민관적 자세와 태도이다. 조엄은 당시 기득권층의 최상층부에 있었던 인물이지만, 결코 자신의 넉넉함만을 좆아 안일에 머물지 않았다. 조엄 이전에도 많은 통신사들이 대마도를 거쳐 일본열도로 향했지만, 누구도 고구마의 존재는커녕 가치도 알아보지 못했으며 가져오려는 실천력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 가치 발굴 능력과 높은 실행력을 드러낸 조엄의 경우엔 달랐다.
조엄의 ‘목민관 리더십’은 오늘날 먹거리 홍수에 빠져있을지라도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 오히려 그의 정신과 행적을 추앙함으로써 공인으로서 진정한 지도자의 책무가 무엇인지 곱씹어 보게 된다.

문익점의 목화씨에 버금가는 ‘고구마 혁명’

고구마를 가져오기 400여 년 전 문익점이 목화씨를 처음으로 가져와 ‘입을거리 혁명’을 이루어냈다면, 조엄은 조선에 최초로 고구마를 도입함으로써 ‘먹거리 혁명’을 이뤄냈다. 이들은 의식주 중 두 가지 중요한 민생 문제를 해결한 양대 민생전문가이자, 한국사 최고의 혁신가들이다.
오늘날 조선 최대의 식(食)문화 혁신가 조엄을 통해 위대한 리더들의 활약상을 살펴보는 것은 뛰어난 경영 전범을 가까이서 본받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이 250여 년 전의 탁월한 초발혁신가를 불러내려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조엄이 시작한 ‘고구마 프로젝트’는 뒤를 이은 혁신가 그룹에 의해 종자와 재배 지식이 동시에 전수되고 향상되는 누적의 힘을 발휘한다. ‘먹거리 혁명’의 최초 방아쇠를 당긴 초발혁신가들의 역할이 있었기에, 그들이 보여준 오리지널리티는 결코 작게 볼 수 없다. 시간이 갈수록 지식은 퍼져가고 자발적 참여로 집대성되면서 매우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구휼 수단이 되었다. 이처럼 조엄이 이룬 성취는 세세토록 수많은 생명을 살려내는 보은의 행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조엄의 고구마 혁명을 통해, 오늘날 식량주권의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보다 궁극적인 의미로 개방화의 효익과 웅비의 제 조건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기업들은 어떤 성장 동력을 마련할 때 혁신과제가 작동하는지 살펴보아야 하며, 공적인 조직에 속한 뭇 리더들은 무엇이 진정한 목민관의 조건인지를 충분히 숙고하여야 한다.
1999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특유의 문학적 사유로 인문·경영의 정수를 담은 32 권의 책을 썼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남자》1,2, 《이끌림의 인문학》, 《마흔으로 산다는 것》,《창조의 CEO 세종》, 《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 《남왜공정》, 《그리메 그린다》 등이 있다.
이 책은 조선 최초로 고구마를 도입함으로써 ‘먹거리 혁명’을 이뤄낸 영호 조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고려 말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와 처음으로 ‘입을거리 혁명’을 이루어냈다면 조엄은
영조 시기 고구마를 도입해 구황 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먹거리 혁명’의 선구자이다. 이 점에서 문익점과 조엄은 양대 민생문제 전문가이자, 실질적으로 민생 현안을 해결한 한국사 최고
의 혁신가들이다.
조선 최대의 식(食)문화 혁신가 조엄을 통해 우리 역사 속 위대한 리더들의 활약상을 살펴보는 것은 뛰어난 경영 전범을 가까이서 본받는 것과 같다.
현재 인문경영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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